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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불가사의-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역사와 신화

by reco-content 2025. 11. 2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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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 위에 떠 있는 ‘돌산’ 등대의 탄생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즉 파로스 등대는 고대 지중해 항해자들에게 “저기만 보이면 살았다!” 싶은 구원의 랜드마크였어요.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 앞바다 파로스(Pharos) 섬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거대한 등대를 세운 것이 시작입니다. 공사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시작하고,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 때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요. 높이는 대략 100m 이상, 최대 110m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피라미드 다음으로 높은 인류의 건축물이었죠.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 등대를 단순한 항로 안내 시설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부와 기술력을 상징하는 **“돌로 만든 인공 산 + 도시 로고”**처럼 여겼습니다.

2. 세 단으로 쌓은 초호화 타워 – 아래는 네모, 중간은 팔각, 위는 원통

파로스 등대의 형태는 꽤 독특했어요. 아랍 여행가들과 중세 기록에 따르면, 아래에서부터 네모(사각형)–팔각형–원통형으로 올라가는 3단 구조였습니다. 맨 아래는 두꺼운 석재로 쌓은 거대한 사각 기단, 그 위에는 약간 가늘어지는 팔각형 탑, 마지막으로 위쪽에는 둥근 원통형 탑이 올라가 있었죠. 맨 꼭대기에는 불을 피우는 공간과 함께 신상(주로 제우스나 포세이돈, 혹은 헬리오스 상으로 추정)이 서 있었고, 밤에는 불빛이, 낮에는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광택 금속판) 덕분에 수십 km 밖에서도 등대를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선원들 입장에선 “저 탑이 보이면, 지금 길 제대로 가는 중”이라는 안도감의 아이콘이었겠죠.

파로스 등대

3. 기술력과 허세가 합쳐진 ‘국가 프로젝트’

이 정도 규모의 등대를 세우는 건 단순히 “배 길 안내해 주자”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석재를 바다 한가운데 섬까지 옮기고, 수십 층 높이로 쌓아 올린 뒤, 그 위에서 밤마다 불을 피우고 연료를 올려야 했으니까요. 건축가는 흔히 **크니도스의 소스트라토스(Sostratus)**로 전해지는데, 실제로는 왕의 이름만 크게 새겼고, 자신의 이름은 몰래 석조 아래에 새겼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또 이 등대 덕분에 파로스(등대)라는 지명이 나중엔 아예 “등대”라는 일반명사로 굳어져서, 오늘날 프랑스어 phare, 이탈리아어·스페인어 faro, 포르투갈어 farol 같은 단어들의 어원이 되었죠. 즉, “등대” 하면 떠오르는 기본 이미지 자체가 파로스 등대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4. 지진에 무너지고, 바다 밑으로… 그래도 끝까지 남은 불가사의

파로스 등대는 무려 천 년 이상 버티며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지켰지만, 중세에 반복된 지진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10세기 이후 큰 지진을 여러 번 맞으면서 상단이 무너져 내렸고, 1303년과 1323년의 대지진 때 사실상 대부분 붕괴된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석재는 15세기경 같은 자리 근처에 세워진 **카이트베이 요새(Citadel of Qaitbay)**를 짓는 데 재활용되었고, 일부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어요. 1990년대 이후 수중 고고학자들이 항구 바닥에서 거대한 석재 블록과 조각들을 발견해 조사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 유물들을 인양해 3D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실제 등대를 보지 못해도, 고대 기록과 바닷속 유물, 컴퓨터 그래픽을 합쳐 상상 속에서 다시 한 번 지중해 밤바다를 밝히는 파로스의 불빛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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