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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불가사의-고대]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

역사와 신화

by reco-content 2025. 11. 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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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우솔루스’ 때문에 생긴 단어, 마치 이름값 하는 무덤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단어 ‘마우솔렘(mausoleum, 웅장한 묘)’의 원조예요. 기원전 4세기, 지금의 터키 보드룸에 해당하는 고대 도시 할리카르나소스에 살던 카리아의 통치자 마우솔루스와 그의 아내이자 여동생인 아르테미시아 2세를 위해 지은 거대한 무덤이었죠. 당시 이 지역은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였지만, 그리스 문화의 영향도 강해서 “페르시아+그리스 믹스 스타일” 도시였고, 영묘 역시 그런 복합 문화를 한몸에 담은 상징물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웅장한 무덤만 보면 “저거 마우솔루스 식이네?” 하다가, 결국 그의 이름 자체가 모든 호화 묘의 대명사가 된 셈이죠.

2. 세 단으로 쌓은 ‘건축 종합 선물세트’

고대 기록과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복원한 모습을 보면, 이 영묘는 크게 세 단 구조였다고 합니다. 맨 아래는 약간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각형 석조 기단, 그 위에는 이오니아식 기둥 36개가 둘러싼 회랑(pteron), 맨 위에는 24단 정도의 피라미드형 계단 지붕, 그리고 꼭대기에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쿼드리가)와 부부의 조각상이 올라가 있었죠. 전체 높이는 약 40m 중반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도시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딱 “도시의 랜드마크 겸 초대형 무덤 타워” 느낌이었을 거예요.

할리카르나소스 영묘

3. 그리스 슈퍼스타 조각가들이 총집합

아르테미시아 2세는 남편이 죽자 “이 사람 무덤은 그냥 대충 돌무더기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그리스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을 대거 스카우트합니다. 스코파스, 프락시텔레스 등 이름만 들어도 “와…!” 하는 수준의 슈퍼스타 조각가들이 팀을 이뤄, 기단을 둘러싼 부조(전투 장면, 아마존 전사와 그리스인의 싸움 등)와 자유로운 조각상들을 제작했죠. 영묘 외벽에는 신과 영웅, 말 탄 전사, 신화 장면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고, 관람객들은 “저건 무덤이 아니라 야외 조각 박물관이다”라고 느꼈을 겁니다. 이런 화려한 장식 덕분에 각지 여행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결국 7대 불가사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4. 무너졌지만, 이름과 스타일은 계속 산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는 중세에 일어난 지진들로 크게 파괴되었고, 남은 돌들은 십자군 시대 성채를 짓는 데 재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장에는 기단 일부와 부서진 조각 조각만 남아 있지만, 복원도와 남은 조각 덕분에 당시의 웅장함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무덤이 이후 수많은 왕과 귀족들의 ‘나도 저렇게 묻히고 싶다’ 욕망에 불을 붙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큰 능이나 기념 묘를 가리켜 “마우솔렘”이라고 부르고, 대형 장례 건축을 설계할 때 할리카르나소스 영묘의 **“높은 기단 + 기둥 숲 + 위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실루엣”**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죠. 건물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디자인과 이름은 여전히 세계 곳곳의 묘지와 역사책 속에서 살아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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