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
1. 얼어붙은 전조
첫 겨울은 길었다. 이름 없는 바람이 세 번의 혹한을 몰고 와 사람들 마음을 얼게 했다. 형제는 서로를 의심했고, 맹세는 값싼 말처럼 흩어졌다. 밤마다 예언자들은 속삭였다. “갸랄호른이 불리면 길들여진 모든 질서가 풀려날 것이다.” 오딘은 높은 자리에서 미래를 들여다보았고, 늑대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르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신들도 알았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 라그나로크—신들의 결말이라는 것을.

2. 뿔나팔과 개전
그리고 그날, 헤임달이 뿔나팔을 불었다. 잠겨 있던 문들이 열리고 사슬이 끊어졌다. 로키는 어둠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거인들과 합류했고, 망자들의 손톱으로 만든 배 나글파르는 검은 물결을 갈랐다. 불거인 수르트르는 들고 있던 불의 칼로 하늘의 가장자리를 그으며 전장을 밝혔다. 비그리드 평원에 모인 군세 앞에서 신들은 마지막으로 묵직한 침묵을 나눴다. 토르는 묠니르를, 티르는 상처 난 손을, 프레이는 이미 잃어버린 검 대신 용기를 쥐었다.
3. 예언의 전투
전투는 오래 준비된 예언처럼 정확했다. 펜리르는 벌판을 가로질러 달려와 오딘을 삼켰고, 말 없는 신 비다르는 신발의 틈새로 늑대의 턱을 벌려 복수했다. 토르는 요르문간드를 내리쳤지만, 독이 흘러내려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티르는 지하의 개와 맞서 서로를 찢었고, 헤임달과 로키는 서로의 심장에 칼끝을 박았다. 수르트르가 팔을 높이 들자 숲은 불꽃으로 일어섰고, 바다는 불길을 마주해 끓어올랐다. 산이 무너지고 하늘이 갈라질 때, 세계는 스스로의 끝을 이해했다.
4. 끝이 낳은 새벽
하지만 종말은 문이 아니라 회전문이었다. 불길이 사라진 자리에서 땅이 다시 솟았고, 살얼음 같은 햇빛이 풀잎을 어루만졌다. 발드르는 어둠에서 돌아왔고, 비다르와 발리, 모디와 마그니는 조용히 새 시대의 자리를 정리했다. 숲 깊은 곳, 호드미미르의 나무 그늘에서 몸을 숨겼던 리프와 리프트라시르는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며 일어섰다. 그들은 낟알을 손으로 비벼 먹고, 어린 새의 울음 사이로 내일의 언어를 배웠다. 하늘에는 태양 여신의 딸이 떠올라 어머니의 길을 다시 걸었다. 라그나로크—끝이라 불렸던 그 사건은, 사실 세계가 오래 품어온 숨 고르기였다. 이제 새 약속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