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문명은 오늘날 이라크 남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남쪽 평야에서 기원전 4천 년대 후반에 꽃핀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았지만, 강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 농업이 발달하면서 밀·보리 재배가 가능해졌고, 남는 곡식을 바탕으로 전문 장인·상인·관리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농업 생산력과 인구가 집중되면서 우루크, 우르, 라가시 같은 독립된 도시 국가들이 생겨났고, 각 도시에는 신전과 행정 중심지인 지구라트가 세워졌습니다.

수메르의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는 인식 아래, 신을 대신해 다스리는 왕(루갈)과 제사장 집단이 정치 권력을 쥐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관리·서기·군인·상인·장인·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존재했고, 전쟁 포로나 빚을 진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도시 국가들은 관개 수로와 토지를 둘러싸고 자주 전쟁을 벌였고, 이를 통해 영토가 확대되거나 패권 도시가 바뀌는 정치적 변동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군사력과 행정 능력을 갖춘 왕권이 점점 강해지며, 단순한 촌락 공동체에서 국가로 발전해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메르인은 점토판 위에 갈대 펜으로 새기는 설형문자를 발명해 곡물의 양, 세금, 거래 내역, 법, 신화와 노래까지 기록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상형 기호였지만 점차 음가를 가진 문자 체계로 발전해 이후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공용 문자로 쓰였습니다. 그들이 남긴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신화는 인간의 죽음, 우정, 영원한 삶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문학·철학적으로 가치가 큽니다. 수메르인의 종교는 다신교로, 하늘·땅·바다·폭풍을 관장하는 여러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습니다.
수메르 문명 자체는 이후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다른 세력에 흡수되며 점차 이름을 잃었지만, 그들이 만든 도시·문자·법·관개 기술은 후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왕이 신 앞에서 서약하는 법전 전통, 점토판 문서 행정, 지구라트 형태의 신전 건축 등은 이후 여러 문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록 “수메르인”이라는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인류가 농업과 도시, 기록 문명을 기반으로 복잡한 사회를 설계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수메르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