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계관”을 짤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시작을 어떻게 열 것인가다. 인류의 다채로운 신화가 공통으로 붙잡은 답은 창조신이다. 창조신은 말 그대로 ‘무(無)나 혼돈’에서 우주와 땅, 생명과 규범을 끌어내는 첫 행위자다. 흥미로운 점은, 문화가 달라도 창조의 패턴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것. 이를 알면 블로그 글감도, 창작 세계관의 뼈대도 단단해진다.
대부분의 신화는 **무정형의 혼돈(카오스)**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는 말을 내뱉어 세계를 세우고(말=법=로고스), 누군가는 손으로 흙을 빚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 몸을 해체해 하늘·땅·바다를 만든다. 이 전환의 핵심은 “경계 짓기”—위·아래, 빛·어둠, 생명·무생물의 선을 그어 규칙을 확정하는 일이다. 세계관 설계에서도 이 단계가 곧 물리 법칙과 윤리 규범의 시원이 된다.

창조신이 곧 최고신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신화에서 창조와 통치는 분리된다. 어떤 창조신은 세계를 세팅한 뒤 물러나고(은둔), 현장의 통치는 폭풍·전쟁·지혜의 신이 맡는다. 또 간혹 트릭스터가 창조의 ‘오류 수정’ 역할을 한다—불을 훔치거나, 언어·농경·도구를 퍼뜨려 세계를 살게 한다. 이는 현대 세계관에서 “엔지니어링 팀(창조) vs. 운영·거버넌스 팀(통치)”로 비유할 수 있다.
사람 창조에는 세 가지 동기가 반복된다.
창조신은 단순한 ‘시작 버튼’이 아니다. 질서의 철학, 권력의 정당화, 인간의 과제를 동시에 코딩하는 최초의 스크립트다. 이 틀을 이해하고 변주하면, 당신의 블로그 연재는 신화 소개를 넘어 독자 자신의 세계관을 점검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확장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대지모신·하늘신’의 역할 분담과, 그 사이에서 탄생하는 영웅의 서사를 다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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